[법으로 읽는 부동산]
![재건축·재개발 일몰제, 도시정비를 가로막는 탁상행정의 그림자[김정우의 법으로 읽는 부동산]](https://img.hankyung.com/photo/202509/AD.41603025.1.jpg)
최근 재건축·재개발 현장이 정비구역 해제, 즉 ‘일몰제’로 시끄럽다. 일몰제는 정비구역 등이 지정된 후 일정 기간 동안 조합설립인가, 사업시행인가 등 필수 절차가 진행되지 않으면 해당 구역을 강제로 해제하는 제도다. 입법 취지는 명확하다. 장기간 표류하여 주민 재산권만 묶어두는 구역을 정리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필자의 눈에 비친 일몰제는 그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의 전형으로 변질되어 있다.
도시정비법 제20조는 일몰제를 규정한다. 이는 정비구역 지정 이후 수년간 사업이 지지부진할 경우 주민의 재산권이 과도하게 침해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일몰제는 도시정비의 효율성과 주민 권익, 재산권 보호를 위한 ‘출구전략’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문제는 적용 방식이다. 법은 주민들의 실제 의사나 사업의 실질적 진행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오직 ‘기한 준수 여부’만을 기준으로 삼는다. 달력의 날짜만이 구역의 존폐를 가르는 잣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정비사업은 각 단계별로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장기 프로젝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 기간 도과를 이유로 무조건 일몰제를 적용하는 것은 여러 가지 폐해를 유발할 수 있다.일몰제로 인한 현실적 폐해는 무엇이 있을까. 첫째, 주민 의사와 상관없이 사업이 좌초될 수 있다. 조합원 대다수가 사업을 원해도 기한이 지나면 구역은 해제된다. 이 경우 주민들이 사업을 추진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서도 ‘시간 초과’라는 이유 하나로 사업은 무산될 수 있다.
둘째, 형평성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어떤 구역은 적극적인 추진으로 사업시행인가 직전 단계에 도달했음에도 기한을 며칠 넘겼다는 이유로 해제되고, 또 다른 구역은 사업이 지지부진했더라도 단순히 기한을 맞췄다는 이유로 존치된다. 이는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며 형평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셋째, 행정 편의주의 내지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정비사업은 특성상 수많은 변수로 지연될 수 있다. 소송, 민원은 물론 코로나19, IMF 외환위기와 같은 외부적 금융위기 등 조합이 통제할 수 없는 사정도 많다. 그러나 일몰제는 이를 고려하지 않는다. 오직 ‘기한’만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결국 일몰제는 행정의 편의만을 위한 제도로 전락할 수 있다.더 큰 문제는 법제처와 국토교통부의 태도다. 법제처는 유권해석을 통해 “일몰제 기간 연장은 단 1회만 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도시정비법 어디에도 연장 횟수를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 오히려 국토부는 과거 “재연장도 가능하다”는 해석을 내린 바 있다. 법제처의 해석은 법 문언을 넘어선 과도한 확장해석이며 장기 프로젝트의 특성을 무시한 결과다.
국토부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국토부는 애초에는 유연한 태도를 보였지만 결국 법제처 해석을 그대로 수용해 실무 지침으로 삼았다. 중앙행정기관이 현장의 혼란을 조정하고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법제처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한 셈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일몰제를 폐지할 필요는 없다. 장기 표류 사업을 정리할 출구전략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경직된 방식은 주민 권익을 해치고 주거환경의 질을 개선하려는 도시정비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따라서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
첫째, 연장 횟수에 제한을 두지 말아야 한다. 사업이 실질적으로 추진 중인 경우라면 추가 연장을 허용해야 한다.둘째, 주민 의사를 반영해야 한다. 일정 비율 이상의 조합원이 정비구역 존치를 원하면 단순히 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해제해서는 안 된다.
셋째, 지정권자에게 재량을 부여해야 한다. 사업 진척도, 공공성, 주민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일몰제는 반드시 다시 설계돼야 한다. 주민의 권익과 도시의 미래를 함께 지키기 위해 행정 편의가 아니라 현장을 존중하는 제도로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도시환경을 개선하고 주거생활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도시정비법의 근본적인 목적에 부합하는 길이다.
김정우 법무법인 센트로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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